사회정치 내생각

정도전 정몽주 그들의 대의

에릭과덱스터 2019. 7. 10. 00:49

고통스러우신가 그간 자네가 앉은 그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네. 하나같이 자네의 간계에 당한 사람들이었고, 그중엔 스승님도 계셨네 달게 받으시게. 나를 보자 하였다지 천출임을 이제 자복하겠는가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것인가

 

천만에

 

허면 나는 천출이어야 하는 것이군

 

그럴세, 이런 방식 자네가 즐겨 쓰는 방식 아니었던가

 

맞네. 해서 자네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역시 잘 알고 있네. 자넬 내가 이렇게 만들었네. 미안하네 포은

 

이런다고 내가 자네에게 온정을 베풀 거라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제발 이쯤에서 멈추시게

 

뭐라?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자네가 죽을 수도 있어

 

순순히 자복이나 하시게

 

이제 그만 고려에 대한 부질없는 희망을 버리고 나와 함께 역성의 대업을 이루세

 

역성의 대업?

 

이것이 나의 자복일세

 

천출이란 사유로는 기껏해야 귀양밖에 보낼 수 없어 불만이었거늘 이리 정체를 드러내주다니. 알겠네, 내 기꺼이 죽여주지

 

대업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이성계 대감의 확고 부동한 뜻이네. 나에게 대역 죄를 물어 죽이려면 이 시중도 함께 죽여야 할 터, 자네에게 그럴 힘이 있겠는가

 

여태껏 단 한 번도 힘이 있어 싸운 적은 없었네. 내가 믿는 것은 오로지 대의. 내게 힘이란 게 있었다면 그것은 대의네.

 

자네의 대의만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말게. 대의의 반대편에는 불의가 아니라 또 다른 대의가 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란 말일세

 

해서 나라를 파괴하려는 수작마저도 대의라 이름 붙이려는 것인가

 

하늘이 버린 나라였어, 백성을 버린 나라였고, 그런 썩어빠진 나라를 수호하는 것을 과연 대의라 이름 할 수 있겠는가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그 입 닥치시게

 

이 척박한 삼한의 땅에 성리학의 이념과 민본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나라를 만들 것이네. 이성계 같은 덕망 있는 자가 군주가 되어 왕도를 밝히고, 자네 같은 자가 집정 대신이 되어 문무백관과 더불어 나라를 다스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 것이란 말일세

 

지금의 고려로도 얼마든지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네. 내가. 나 정몽주가 그리 만들어 보일 것이야.

 

이 고려로는 아니 된다 하지 않는가

 

고려를 우습게 보지 말게. 천하에 존재하는 나라 중에 가장 오래된 나라일세. 몽고족에 맞서 60년을 싸워 지킨 나라이고, 중원의 대국조차 만들지 못한 쇠 활자와 대장경을 만든 고매한 정신의 나라이고, 나 정몽주에게 뼈와 살을 만들어준 나의 전부일세.

 

포은..... 자네를 기다릴 것이네. 내 숨이 붙어있는 한 자네를 기다릴 것이야..

[출처] [정도전 37회 다시보기] 연기의 끝, 사극의 끝|작성자 병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