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보수
한국인이 우울증이라는 병을 밝힌다는 것, 정신과를 다닌다는 것 feat. 故 넥슨 회장 김정주 본문
한국인이 우울증이라는 병을 밝힌다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며 최대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일때 겨우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다. 한국인이 우울증이라는 병을 밝힌다는 것은 차마 가족한테도, 직장 동료한테도, 깊게 사귄 친구에게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결코 쉽게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나는 고3때 정신과를 처음 방문했다. 나는 그때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정신과에 간다는 것이 나 스스로 정신과를 방문할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의 인식이 그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며 수치스러운 일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 당당하게 갈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정신과에 들어가서 의사에게 들은 말중 가장 충격적인 말 한마디는 "군대 뺄려고 여기 왔느냐(내가 실제로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보다 "이렇게 용기를 내서 와주셨는데" 였다. 군대 뺄려고 여기 왔느냐라는 말도 매우 충격적이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후자가 더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정신과 의사 스스로도 자신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것을 놀랍게 여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정신과 의사조차도 정신과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를 "용기를 내주는 환자" "신기한 환자"로 보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곳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정신과를 가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정신병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고3때 누구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정신과에 혼자 직접 내원했다. 그 누구의 조언도 ,메스컴의 설득도 아니었다. 당연히 기침을 하면 감기약을 타기 위해 내과에 가는 것처럼 나는 우울증이 있으니까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에 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행동은 한국에서는 "큰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일" 임을 철이 들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정신과에 내원한 후 그 후의 시선들이 얼마나 잔인하며 한국인들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그 당시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단언컨데 그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더라고 하더라도 정신과에 내원했을 것이다. 나에겐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적 시선보다 내 병의 치유가 더 큰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과에 우울증으로 내원하지 벌써 횟수로 8년이 되었다. 처음에 언급한 "군대를 뺄려고 여기 왔느냐" 라는 의사로부터 충격을 받고 중간에 잠깐 3개월 가량 내원을 중단한 걸 빼면 참 오래도 다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전혀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울증이 있는데도 사회적 시선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편견때문에 가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다 알 것이다.
얼마전 나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재벌 순위에 손가락에 들어가는 그리고 나의 유년기를 거의 채워준 故 넥슨 회장 김정주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옛날 재벌이었던 고 정몽헌씨가 불미스럽게 돌아간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또다른 재벌인 김정주씨의 별세는 나에겐 사뭇 달랐다. 앞서 말했듯이 김정주씨는 내 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을 정도로 나에겐 각별한 사람이었다. 그가 만들었던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은 내 유년기를 수천번 뒤흔들었던 만큼 내 추억에 장으로 남아있고 그 당시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과도 같은 게임이었다. 그 게임을 만들었던, 내 유년기를 뒤흔들었던 사람의 죽음... 그것은 바로 악독한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은 내가 정말로 원한이 있는 사람도 차마 겪게 하고 싶지 않을 병이라고 나는 여러번 전포스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만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병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현재 코로나블루로 한국인의 거의 모두가 우울증이라는 증상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약간의 우울감도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데 그 우울감이 더 세지고 오래간다고 생각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것이 우울증이다.
그 수많은 재력으로도 잠재울 수 없었던 사탄같은 우울증이라는 병은 김정주씨를 끝내 삼켜버렸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조금만 더 버티고 노력하시지... 조금만 더 인내하고 가족들을 생각하시지...
나는 2년전부터 매일 걷기 2시간과 식단관리를 통해 현재 우울증을 거의 완치단계에 이르게 했다. 우울증이 없는 삶이 이토록 행복한 삶인지 지금 여실히 느끼면서 살고 있을 정도다. 참으로 값지고 값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노력을 달성하기까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고 힘들었다. 어머니와 의사들의 잔인한 말들(네가 정신병자니?, 학교폭력은 그 시절에 누구나 당하는 거야, 군대 뺄려고 여기 왔느냐? 인생이 우울증이지 등등) 그외 15분도 걷지 못하는 잔인한 체력, 한끼도 거르지 못하는 식욕 등은 지난 2년동안 노력해서 이겨내는데 엄청난 힘을 쏟아 부어야 했고 그 과정은 그 어떤 것보다 험난했다. 하지만 이 고난이 재산이 된다는 나의 오랜 좌우명은 끝내 빛을 발휘했고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올해 대학에 입학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기성세대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으니 당신들의 생각만이 진리라는 그 기준을 이제 버리고 열린마음으로 사회를 보라고 말이다. 몸이 다치면 당연히 내과에 가듯이 마음이 다치면 당연히 정신과에 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 아픔을 겪고 있는 당신의 아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게 하라고 말이다. 그러면 대학에 갈때 취업을 할때 불리하지 않느냐고? 단 한마디로 끝내겠다. 내년에도 당신의 그 사랑하는 아이가 당신 옆에 있을 수 있겠는가?
우울증이라는 병을 사회적 시선 때문에 약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취업에 대한 불리함 때문에 끙끙대며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그만큼 치명적이고 파괴적이며 고통스러운 병이다. 그리고 조기치료를 할수록 더 완치될 가능성이 놓은 병이기도 하다. 더 이상 대한민국 사회가 정신과에 가는 것을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故 김정주씨의 명복을 빕니다.
- 내 유년기를 행복하게 해준 멋진 나의 영원한 아저씨에게-
'사회정치 내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주당 이해는 하지만 검언개혁 합의하길 (0) | 2022.04.12 |
---|---|
국민의힘 졸렬하고 추잡한 인간들 (0) | 2022.04.12 |
어떻게 변한게 없습니까? feat 북부정류장 안전벨트 (0) | 2022.03.28 |
학교폭력 가해자 분리조치를 상급학교를 비롯 대학교와 군대, 직장까지도 적용해야 합니다. 또한 생기부에서 영구박제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소년법을 전면개정해야합니다. (0) | 2022.02.21 |
사민주의자이자 개혁적보수인 나의 선택은 윤석열이다. feat. 20대 중도층 정의 (0) | 2022.02.10 |